주의력 끌기 1
교수란
직업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강의를 할 때 수백개의 초롱 초롱한 눈동자가 온통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자기 입에서 흘러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 빠짐 없이 필기하는 "어여쁜" 학생들을 볼 때 느낄수 있는 그 황홀함! 강의는 확실히 중독성이 짙은 직업입니다. 그러나 이런 환상을 깨부수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띄입니다. 아예 엎어져 자거나 옆 사람하고 속닥속닥거리는 "못되먹은" 학생을 보는 순간 속이 확 뒤집어지지 않습니까?
교수가
강의를 아무리 열심히 준비하였더라도 학생들이 강의 내용에 주의력을 모으지 않으면 헛된 일입니다. 강의 전날 밤새워 준비한 강의라면 더욱 더 열이 뻗치겠지요. 그래서 야단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그러나 아무리 야단쳐봤자 졸고 싶은 학생은 계속해서 졸게됩니다. 다만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조는 기술을 터득할 것입니다. 눈을 부릅뜨고 졸 수 있는 경지까지 도통한 학생도 있습니다. 잡담하던 학생은 말소리 대신 쪽지를 돌리며 킥킥거릴 것입니다. 이럴 때 어이없어 하거나 실망하거나 더 크게 야단치지 마셔야 합니다. 왜냐 하면 학생들의 그러한 태도는 너무나 당연하며, 괜히 윽박지르다가는 역효과만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력에
대한 연구를 보면 "주의력은 보다 더 관심을 끄는 대상에게 저절로 가게된다."하는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 있습니다. "옮겨다니는" 주위력은 생리적 행위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깊은 생각에 잠겨 길을 걷다가도 자동차가 빵빵하면 차 쪽으로 신경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교수의 강의보다 옆 학생의 잡담이 더 흥미롭다면 주의력은 저절로 옆 학생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강의 시간에 잡담하는 학생들을 야단치기보다는 자신의 강의가 혹시 지루하지 않았나 (왜 학생들의 주의력을 얻지 못했을까) 한번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교수가
반성해야 한다고 해서 주의산만한 학생들에게 전혀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학생들은 물론 배울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배울 자세가 부족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특히 초중고 때 예습 복습을 집에서 미리 다 하고 학교에는 별로 새로운 것을 배운 적이 없던 학생들이지 않습니까. 입시에서 진을 뽑았고 공부라면 진저리를 치는 학생들 아닙니까. 이런 학생들은 야단친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제
주의력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학생들이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기술을 터득하면 이런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공자님도 교육의 4대 조건의 하나로 "예방"을 꼽았습니다.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1. 학습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2. 수업방법을 다양하게 사용한다.
3. 교수가 행동을 통하여 주의집중을 유지한다.
<<
잔소리코너>>학생들의
주의력을 모으기 위해 학생들이 졸 때 야단친다거나 떠들 때 벌 준다거나 하는 "외부 강압적 통제" 방법은 구시대의 방법입니다. 지식을 독점한 교수의 권위가 절대적이었을 때에나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한때 학생들이 자신의 지도 교수를 "아바이"라고 불렀습니다. 교수가 학생들의 앞날에 아버지 만큼 절대적인 행세를 하던 때의 유행어가 구시대의 학생-교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새시대에는 교수의 권위가 "모범성"에서 나옵니다. 학생들을 윽박지르는 교수는 새시대의 모범이 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권위를 내세우는 교수는 학생들에게 무섭다기보다는 그저 이상하거나 불쌍한 존재로 비쳐질 따름입니다. 권위 내세우기는 스스로 초라해지는 지름길인 것이지요.
주의력 끌기 2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방법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1.
학습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강의실
분위기는 학생들의 태도와 행동을 상당히 좌우합니다. 강의를 마지못해 듣는 학생도 다른 학생들의 모습에서 고조된 기대감, 짜릿한 긴장감, 적극적인 행동력을 엿볼때 계속해서 혼자 시큰둥하게 앉아 있지 못하게 됩니다. 남이 하지 않으면 자기도 하지 않고 남이 하면 우루루 따라하는 군중심리가 발동되기 때문입니다.
강의실의
분위기를 잡는데는 가장 중요한 기회가 강의 첫시간입니다. 첫날 강의시간에 학생들을 둘러 보십시오. 학생들은 서로 곁눈질하기 바쁩니다. 이 수업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서로 눈치로 합의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첫 몇분 안되어 결정이 나버립니다. "다른 수업(교수)과 별 다를 것이 없다."와 "이 수업(교수)은 뭔가 다르다."로 나눠 질 것입니다. 주의력은 "뭔가 다르다"라고 인식되는 대상한테 집중되게 되어 있습니다. 결론은 졸거나 신문을 보거나 잡담하는 학생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의 첫날부터 철저히 예방해야 합니다. 강의실의 학습 분위기를 첫날부터 잡아야 합니다. 한번 흐려진 분위기를 훗날 잡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강의
첫날에 학습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 중에 그 강의실에서 지켜야 할 <규칙 나열하기>가 있습니다. 모두들 이미 알거나 알고 있어야 하는 규칙이라도 다시 하나 하나 짚고 넘어 갑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규칙 몇가지만 언급하십시오. 제가 즐겨 쓰는 규칙은 단 둘입니다.
(ㄱ) 자신을 해치는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
(ㄴ) 남을 해치는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
물론
위 규칙에 위반되는 예로서 졸기, 신문보기, 잡담하기 등을 반드시 지적합니다.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의 규정은 각 교수님의 구호에 맞도록 정해도 좋겠으나 많으면 많을수록 신경을 많이 쓰셔야 합니다. 저는 종강되기 전에 책가방 챙기기, 사전 통고/허락없이 수업 빼먹기, 늦게 강의실 들어오기 정도 신경씁니다.)
그리고 첫 주에 규칙을 어긴 행동이 나올때 그냥 흘려 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행동"을 지적하고 기본 규칙을 상기시켜 주십시오. 그러나 "학생"을 꾸짖지는 마십시오. 행동은 하나의 사건이지 어느 사람의 전부가 아닙니다. 이렇게 일주만 지나가면 강의실의 기본 환경은 정착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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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도 기술>>위에
개재된 방법은 요구 사항을 직접 전달하여 강의실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법입니다. 이외에 간접적으로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법이 많은데 차츰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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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코너>>아무리
학생들이 배울 자세가 되어 있고 강의실의 규칙을 잘 지키더라도 주의력이 산만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차 소리가 심하게 들리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의 주의력을 강의에 집중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주의력이란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 감각기관의 안테나를 활짝 열어 놓는것인데 소음이 곁따라 들어옴으로써 정보 취재 기구 (정신)를 혹사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교수법 기술을 달달 외운 교수도 학생들의 주의력을 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두손 바짝 들라는 말이 아닙니다. 배정받은 강의실이나 강의 시간을 쉽게 바꿀 수도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소극적인 태도는 자신의 강의가 효과가 없어도 괜찮다는 뜻이며, 그것은 학생들과의 만남이 무의미해도 좋다는 뜻으로 연결됩니다. 더어나가 자신의 노력과 시간에 가치가 없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비하하는 행위입니다. 행정실에 적극적으로 항의해서 차의 통행을 줄이거나 방음장치를 하도록 권의해야 합니다.
2.
수업 방법을 다양하게 사용한다.정보는
감각기관으로 통해 들어옵니다. 교수가 말로 설명을 하면 학생들은 청각기관을 사용해야 합니다. 교수가 말로 한시간 내내 강의할 경우 학생들의 청각기관은 overload되며 이럴땐 "감각기관 자동 보호 시스템"(신경끄기)이 작동하기도 하겠지요. 한마디로, 주의력의 용량에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교수는 학생들이 다양한 감각기관을 사용해서 강의에 지속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수업을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하셔야 합니다.
가장
쉬운 기술은 정보의 미디아를 번갈아 주는 것입니다. 말을 집중적으로 하다가 판서를 한다든지 OHP를 보여준다든지, 그리고 다시 말하기 위주로 되돌아 가는 경우를 뜻합니다. 강의의 내용을 듣기 위주에서 보기 위주로 가끔식 바꿔 주면 학생들은 여러 감각기관을 돌아가며 사용하기 때문에 쉽게 지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듣고 보기 위주 강의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학생들을 상당히 수동적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학생들이 강의 내용을 노트에 필기야 하겠지만 많은 경우 정보가 학생들의 눈과 귀에서 손가락으로 직통으로 전달되지는 않은가 합니다. 정보가 교수의 노트에서 학생의 두뇌를 통과하지 않고 노트로 곧바로 전달될 봐에야 교수님의 강의 노트를 복사해서 학생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겠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강의는 학생들을 능동적으로 유도합니다. 강의 내용이 학생들의 두뇌를 거치고 그 결과 그들의 지식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는 학생들이 행동을 할 때 잘 나타납니다. 강의 내용이 기억에 남는 비율을 조사한 연구 결과는 왜 학생들이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고 능동적으로 수업에 임해야 하는지 뚜렸히 보여줍니다.
"강의 내용이 기억에 남는 비율"
읽기
10%듣기
26%보기
30%보기와
듣기 50%보기와
말하기 70%말하기와
행동하기 90%
"말하기"란 질문하기, 대답하기, 발표하기를 뜻하고 "행동하기"의 예로서 퀴즈 치르기, 문제 풀어보기, 실험하기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큰 강의실의 경우같이 모든 학생이 말을 할 수 없거나 하면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때에는 학생들이 종이 쪽지에 질문과 코멘트를 짧막하게 적어 제출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
잔소리 코너>>지식사회에서는
주의력이 "자원"의 차원에서 인식됩니다. 이 말이 주는 의미는 크게 둘 입니다. 첫째, 주의력은 다른 모든 자원과 마찬가지로 한정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 한정된 돈이나 시간과 같이 한정된 주의력을 어디에다 "투자"를 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경영자가 지식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려고 하면 종업원의 주의력을 주 업무에 모이도록 유도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대학이 지식사회의 기초 지식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강의실이 졸업생을 생산해내는 "공장"(제조산업체)이라는 비유가 절대로 아닙니다. 지식산업은 제조산업과 기본적으로 다른 구조와 과정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수님이 하셔야 하는 역활 중에 학생들의 주의력 관리가 필히 포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3. 교수가 행동을 통하여 주의 집중을 유지한다.
교수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옮긴다, 목소리에 변화를 준다, 학생들과 눈을 맞춘다, 내용에 액센트를 주는 몸동작을 한다 등 몇가지 기술은 이미 <비디오를 통해 자신의 강의 관찰하기>의 몸동작과 목소리 편 (2~4호)에 언급되었습니다.
이런 기술은 자칫하면 쇼맨쉽에 그치기 쉽습니다. 모자에 달린 화려한 깃털같이 쇼맨쉽은 상대의 주의를 일순간 끌 수 있어도 지속 시킬 수는 없습니다. 학생들의 주의력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이런 기술의 바탕에
"진실됨"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우선 강의 내용이 알차게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학생들이 질문과 코멘트를 할 때 진지하게 들어주는 자세가 있어야 하며, 평소에 학생들에게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여야 합니다. 이 것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교수의 행동에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전달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학생들은 자기들에게 관심을 주시는 교수님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대체적으로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습니다.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학생들의 주의력을 얻기 바라시는 교수님들은 학생들의 존경심을 먼저 얻으십시오. 학생들이 배움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하려면 교수는 학생들을 먼저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말로 하기는 퍽 쉬운 듯 하지만 노력 없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교수님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씀 한 마디에도 학생들을 무시하거나 용기를 좌절시키는 메시지가 전해질 수 있고, 몇몇 학생이 상처 받는 것을 보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자기도 혹시 상처 받을까 교수님으로부터 멀리하게 됩니다.
아래에는 흔히 하는 교수님들의 코멘트 가운데 학생들이 가장 듣기 싫어 하는 말들입니다 :
야, 그게 말이나 되냐?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 돼?
어쭈, 제법이네.
니네들 한테 답을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이렇게 부정적인 어투로 반박하거나, 능력을 평가 절하거나, 비꼬는 말을 하는 순간 학생들은 교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반대로 학생들을 존중하고 잠재력을 키워 주려는 말은 긍정적이고, 유연하고 건설적인 내용들로서 학생들이 귀담아 듣습니다 :
그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퍽 독창적인 아이디어군요.
지금 생각을 이러이러한 것과 연관시켜 보면 어떨까요?
요컨대 긍정적인 태도와
"열린 질문"으로 학생들을 대하게 되면 학생들은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하듯 교수님을 향해 눈, 귀, 마음을 몰두하게 됩니다. ("열린 질문"에 대해서는 추후에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학생들의 지적 발달 단계 (페리의 인지 발달 이론)
원래 대학 이상의 교육은 고등 교육이라 하여 영어로는 하이어 에듀케이션(higher education)이라 합니다. 여기서
"고등" 교육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단지 더 많은 지식을 쌓아 올린다는 점이 아니라 "초등, 중등" 교육과는 차원이 다른 고차원적 교육을 받는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페리라는 교육학자는 이것을 좀 더 이론적으로 밝혀 보았습니다. 대학 신입생부터 졸업반 학생까지 어떤 지적 도전이나 이슈에 대해 사고력과 판단하는 과정을 연구해 보니까 4단계별로 발달 유형이 나타나더랍니다.
1. 이원론 (dualism)
가장 낮은 인식 단계는
"이원론"으로써, 사물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보며, 모든 문제에 정답이 있다고 믿고, 또 권위자는 정답을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 강의실에서 권위자는 교수님이니까 "이원론" 차원에 있는 학생은 교수님이 정답을 알고 있다고 믿으며 권위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2. 다중성 (multiplicity)
그러나 학생이 여러 지적 도전을 받게 되거나 현실의 복잡한 상황을 체험하게 되면 더 이상 이원론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페리는 이것을 인지 발달 단계의 두번째 단계인
"다중성" 단계라고 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학생은 한 가지 관점과 풀이 방법에 만족하지 않고, 도전하며 이러 저러 견해를 객관적으로 살펴 보려고 합니다. 편견이나 선입견을 줄인다는 뜻도 되는데, 이 단계에서 학생은 아직도 "정답"은 존재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라 믿고 여러가지 다양한 관점을 포용하려고 합니다. "다중성" 단계는 흑백 논리인 "이원론" 단계보다 생각의 폭은 넓어지지만 자칫하면 세상만사 다 그게 그거라는 혼동의 상태로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3. 상대론 (relativism)
그러나 모든 견해가 다 똑같이 타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학생은 한 단계 높은 인지 발달을 하게 됩니다. 페리는 이것을 인지 단계의 세번째인
"상대론" 단계라 하는데, 이 단계에서 학생은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믿습니다. 두 번째 "다중성" 단계처럼 단지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환경, 배경, 조건 등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물에 대해 초연해지며 객관적일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내려진 결론을 의심하고, "만일 이러저러 하다면….?" (What if…?)하는 의문을 갖고 "상대적"인 관점으로 다시 검토해 보려고 합니다.
4.
"선택에 대한 책임" (commitment)마지막으로 네번째 인식 단계는 머리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단계입니다. 매사를 객관적으로만 보거나, 상대적으로 "만일 이러저러 하다면…?" 하는 의문만 갖는다면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없고 따라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도 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성숙한 인식 단계에 도달하면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되, 여러 상황을 상대적으로 고려한 다음 자신의 평가에 따라 판단한 뒤에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결심을 하는 행동적이고 책임있는 지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까지는 흑백 논리 (이원론)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학을 다녔다고 해서 모두가 책임있는 지성인의 단계에 도달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페리의 연구에 따르면 많은 대학생들이 졸업 할 때까지 이원론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답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 단계는 사람에 따라서는 늙을 때까지도 이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이원론 단계에 있는 학생들에게 고단계의 사고력을 요구하는 강의를 하거나 문제를 주면 학생들은 쉽게 좌절한다고 합니다. 반대로 이미 다중성 단계로 성숙한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흑백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든지 획일적인 사고력을 요구하면 학생들은 따분해 한다고 합니다. 좋은 강의는 학생들의 인지 발달 수준을 파악하고 그 수준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 준다고 합니다.
다양한 지능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박사는 하버드 졸업생들이 졸업한 후에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하는지 오랜 기간을 관찰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사회의 성공과 대학 성적표와 거의 상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더랍니다. 그래서 도대체 왜 그런가 하고 더 자세히 연구해 보았더니 학교의 성적은 대개 두뇌의 극히 일부분 영역에 지나지 않는 논리/수학 능력이나 언어 능력 정도 밖에 측정하지 않기 때문인데, 실제로 인간의 두뇌 능력에는 공간 능력, 음악 능력, 운동 감각, 자기 내적 통찰력, 대인 관계 등 적어도 7가지 서로 다른 영역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능력들은 서로가 무관하게 발달할 수 있어서 예를 들어 음치도 야구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큐(I.Q.)라 하면 지능의 대명사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있는데, 원래 아이큐는 지금부터 약 100년 전에 프랑스의 교육학자 비네(Binet)가 의무 교육을 성공적으로 받을 수 있는 아동과 그렇지 못한 아동을 구분하기 위해 개발한 것으로써, 한 아이가 자기 또래의 평균치에 비해 얼마나 앞섰나, 뒷섰나를 통계치로 적은 수치일 뿐 총체적인 두뇌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이큐는 비슷한 문제에 익숙하게 접하면 점수가 높아질 수 있고, 또는 아동에 따라
"대기만성형"으로 어릴 때는 두각을 나타내지 않다가 늦게 꽃피는 형도 있기 때문에 두뇌의 총체적 능력을 측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일 대학의 스타인버그(Steinberg)박사는 인간의 두뇌 능력에는 적어도 세 가지 영역이 있는데 분석/논리 능력과 적용력과 창의력, 이렇게 셋을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보통 정규 교육 과정에서는 분석/논리 능력에만 치우치고 나머지 두 영역인 적용력과 창의력에 대해서는 측정 방법조차 개발되지 많아서 많은 인재들을
"공부 못한다"는 한 마디로 썩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 합니다.
흔히들 학교 우등생이 사회의 열등생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저는 이 말을 바꾸어 학교의 열등생도 사회의 성공인이 될 수 있다고 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논리/수학 능력이 좀 부족해도 반짝이는 기치와 적용력, 응용력, 현실 감각, 대인 관계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면 회사든 대학에서든 "출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두뇌 능력들이 측정되고 개발될 지 아무도 모릅니다. 과학이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또는 현상을 아직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인간 능력을 축소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멀티미디어 시대에는 다양한 소질을 지닌 학생들이 다양한 능력을 다양하게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양한 직업과 프로그램을 만들 인력과 인재들이 부족하지 않게 됩니다.
인터액티브 강의 기술
제가 지난 몇 년 동안 미시간공대 교수들의 강의를 평가하면서 이상하다고 느낀 점이 있습니다. 미국 강의실에서 교수님들이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이
"Do you have any questions?"(질문 없읍니까?")
또는 "Do you understand?" (알아 들었습니까?)입니다.
이런 질문을 한 교수님은 대체로 세 종류로 구분됩니다. 질문한 다음 아무 대답이 없자 "학생들이 다 알아 들었군"하면서 흐뭇해 하는 교수님, 미심쩍지만 할 수 없다는 떨떠름한 표정을 하는 교수님, "어이쿠, 다행이다" 안심하면서 다음 주제로 재빨리 넘어가는 교수님.
흐뭇해 하는 교수님은 대개 풋내기 신임 교수님입니다. 학생들의 무반응이 강의에 관심이 없다는 표시일 수도 있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강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미심쩍어 불편해 하시는 교수님은 적어도 교수의 본분을 지키려는 양심적인 교수님입니다. 다음 주제로 재빠르게 넘어가는 교수님은
…글쎄요…
사실 이 두 질문은 교수님들이 가장 자주 하면서도 또한 학생들로부터 반응(대답)을 가장 얻지 못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수님들은 이와 같은 질문을 수시로 반복합니다. 교수님의 질문에 반응이 없는 데에는 여러 종류의 원인이 가능합니다. 반응을 얻기 위한 네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학생들이 대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을 한다.
질문이란 그냥 말끝을 올려서 상대로부터 대답을 요구하는 문구라는 생각은 매우 초보적인 인식입니다. "질문"에는 대답의 여부, 교육 목적, 문답 대상 등 삼차원적 요소가 있습니다. 어떻게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참여를 유발할 수 있고, 억누를 수도 있습니다.
(2) 도전적이지만 무비판적인 질문을 한다.
학생들이 정말로 강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였기 때문에 반응이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강의 내용이 과연 학생들의 수준에 적합했는지, 또는 그들의 지적 발달에 기여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따라서 질문은 학생들의 호기심과 도전 의식을 자극해야 합니다. 그러나 차갑게 따지거나 꾸짖는 투가 아니고 따스함이 느껴지도록 해야 합니다.
(3) 학생들의 무반응을 용납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무반응에 대한 교수님의 무반응이 강의실의 기본 분위기를 무반응으로 정착시키게 합니다. (말이 조금 꼬여서 죄송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학생들의 무반응은 학생들이 무반응이 용납되는 학교 분위기에 익숙해진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응(대답)을 아예 바라지 않은 질문은 될 수 있는 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소크라테스식 질문이나 rhetorical question(수사의문)은 예외가 될 테지요?
(4) 강의 목적을 뚜렷하게 제시한다.
강의 목적이란 강의 주제만를 뜻하지 않습니다. 강의 목적에는 학생들이 어떤 주제의 강의를 들은 후,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강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을 경우 교수님께서 "질문 없습니까?"하면 학생들의 머리 속은 벙~할 것입니다. "교수님의 강의가 재미는 있었는데
…뭔가 많은 내용을 전달 받긴 했는데…그 내용이 전부 다 똑같이 중요하지는 않았을 거고… 도대체 내가 무엇을 건졌어야 하는가?" 강의 목표는 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끔 하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다음 호에는 위 네 가지 방법을 하나씩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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