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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욤 드 마쇼 - Guillaume de Machaut

풀꽃(muse417) 2008. 7. 10. 09:40

기욤 드 마쇼 (Guillaume de Machaut, 1300년경 - 1377)  


 마쇼는 14세기 유럽의 최고의 작곡가이자 당대 유명한 시인이었다. 마쇼는 프랑스 신음악(Ars Nova)의 기수로서 중세와 르네상스라는 시대의 전환점 위에서 중세 교회음악의 업적을 집대성하는 한편, 3도 및 6도의 근대적 협화음향, 세속적인 다성음악(폴리포니)을 확립한 위대한 작곡가였다. 

그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1300년경 당시 종교의 중심지였던 프랑스의 북부지방 샹팡뉴(Champagne)의 수도였던 랭스(Rheims)에서 태어나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20대 초반에 1323년경부터 룩셈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던 보헤미아 왕, 요한 왕의 궁정으로 들어가 비서로서 1346년 요한 왕이 죽을 때까지 봉직을 하였다. 이때 시인, 작곡가, 음악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그는 요한 왕을 따라서 이탈리아, 독일, 프랑드르 등 많은 지역을 여행하였다. 1337년에는 랭스 대성당의 사교좌성당의 참사회원이 되었다. 마쇼가 작품 활동에 몰두하게 되는 시기는 1346년 왕이 죽은 이후로 추정된다. 요한 왕이 죽자 요한와의 딸 본(Bonne), 샤르르왕, 베리공아마데우스 6세, 프랑스왕 샤르르 5세의 후원을 받았다. 1362년부터 3년간에 걸친 19세 소녀 페론느 다르망티에르(Peronne d' Armentiere)와의 사랑은, 자신의 자전적인 시 <진실한 이야기 - Voir Dit)에 잘 나타나 있다. 마쇼는 1365년 이후에는 거의 랭스를 떠나지 않고 많은 전례음악을 작곡하였고, 명사로서 주위의 존경을 받으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다가 랭스에서 눈을 감았다. 오늘날 까지도 랭스 대성당 옆에 기욤드 마쇼 거리가 있어 그의 이름을 기리고 있다. 

마쇼는 14세기 작곡가 가운데 란디니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 마쇼의 작품은 그 당시 모든 음악 장르를 망라하고 있다. 20개가 넘는 모테트를 비롯하여 1곡의 4성부 미사곡, 가사가 없는 기악음악인 호케트, 그리고 그의 최고의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120곡의 세속노래이다. 마쇼의 음악에는 아르스 노바의 새로운 리듬이 충실히 사용되고 있지만 그전 시대인 13세기적 요소도 발견된다.

그의 작품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크랩 캐논(Crab Canon) 기법을 사용한 3성부곡 [나의 끝은 나의 시작이요, 나의 시작은 나의 끝이다]와[노틀담 미사곡]은 미사 통상문 전장이 한 작곡가의 다성기법에 의해 통작된 최초의 작품으로서 마쇼의 전 작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이자 역사적인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외 발라드, 론도, 비를레등의 세속가곡에는 단성과 다성의 것이 있으며 그것을 트루베르 가곡의 전통과 결합시켜 수 많은 작품을 남긴 것도 마쇼의 공적이라 할 수 있다. 확실히 마쇼는 14세기 중엽 프랑스 예술 사회에서 독보적으로 빛나는 존재였으며, 고도로 세련된 미적 감각과 기교로 음악과 시를 만들어낸 당대의 엘리트 예술인이었다.


 

출처 : corean
글쓴이 : blue27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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