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오케겜 (Johannes Ockeghem, 1430경-1497경)
뱅수아(Binchois)의 제자로 추정되는 오케겜은 뒤파이, 조스캥과 더불어 15세기 후반의 플랑드르악파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 출생 년도와 출생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그의 어린 시절을 네덜란드 동부 지역에서 지냈을 것으로 추축할 뿐이다. 파리로 진출하기 전 1443-44년 아트워프(Antewarp) 노트르담 대성당의 소년성가대 가수로 활약하면서 한때 미성으로 이름을 떨친 적이 있었다. 2년 뒤 무랑(Moulins)에 있는 부르봉 공작 샤를르 1세의 궁정에서 성가대 가수로 봉직한 적이 있고, 1450년 캄부라이를 방문 뒤파이를 만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1451년부터는 프랑스 궁정으로 옮겨 그가 사망할 때까지 샤를르 7세, 그 후 루이 11세, 샤를르 8세 이은 3대에 걸쳐 40년 동안 처음에는 성가대 가수로, 만년엔 궁정악장으로 프랑스 궁정을 위해 일했다. 한편 그는 1460년부터 35년간 투르(Tours)에 있는 생 마르탱 수도원의 재무관으로 임명받았다. 오케겜이 생애 마지막 부분을 봉직한 것은 프랑스 왕실의 궁정악장이라는 직책이었다. 이 기간 동안에 오케겜의 중요한 종교음악들이 태어났는데, 특히 미사곡에서 훌륭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이 무렵 오케겜은 부르고뉴 악파의 대가 뱅수아에게 배운 적이 있으며 그가 죽자 그를 위해 유명한 [애가]를 남겼다. 그는 또한 그의 선배였던 뒤파이 음악의 영향과 정신적으로는 뷔스누아(Busnois)와 교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오케겜은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13곡의 미사곡을 비록 10개의 모테트, 20여개의 샹송을 남겼다. 그이 대표작으로는 미사[레퀴엠](Missa Pro Defunctis)는 현존하는 진혼곡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그 외 미사[Caput], 미사[무장한 사람](Missa L'homme arme), 미사[폴로라찌오눔](Prolationum)등이 유명하다. 오케겜은 그의 미사곡에서 대위법적인 독창성을 발휘하였는데 오랜 세월 동안 금과옥조로 사용되어 온 정선율을 항사 테노르에만 두지 않고 다른 성부로 이동시키거나 순서를 바꾸기도 하여 당시 사람들로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주의자로 비판되었지만 그의 음악은 완성도 높은 대위법 기법과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당대의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이자 선각자 에라스무스와 같은 사람은 그의 천재성을 높이 사서 오케겜을 ‘음악의 왕자’또는‘오르페우스 재현’이니 하는 찬사를 바치기도 했다. 던스터블과 뒤파이의 음악이 수직적인 풍부한 화성적임에 있다면 그의 음악은 각성부가 독립적으로 중요성을 갖는 수평적인 선율의 대위법적 발전에 있다.
그의 치밀하고 견실한 대위법적 기교는 확실히 플랑드르 악파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조스캥 데프레, 피에르 드 라뤼(Pierre de la Rue), 루아제 콩페르(Loyset Compere)등 많은 훌륭한 제자를 남긴 훌륭한 선생이기도 하였다. 조스캥은 그의 스승 오케겜의 죽음을 애도하는 유명한[오케겜의 죽음에 대한 애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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