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논은 ‘규칙’ ‘표준’을 뜻하는 그리스어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중세 이래 가장 엄격한 모방 형식을 갖춘 대위법 악곡의 일종이다. 주제인 제1성부의 선율이 시작되고, 이것에 응답하는 다른 성부에 의해,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정확하게 주제 선율이 모방되는 형식을 카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카논과 푸가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 다 모방에 의해 전개되는 형식이다. 그러나 푸가에서는 모방이 주제에만 한정되는 것에 반해, 카논에서는 시종 일관 모방이 행해지는 것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추천음반
파헬벨의 [카논과 지그]는 주로 바로크 명곡집에 수록돼 있다. 따라서 이 곡을 제외한 곡들 중에서도 좋은 곡들이 많아서 푸짐한 종합선물같기도 하다. 장 프랑수아 파야르가 지휘한 파야르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Erato, 1984년 발매)는 오랫동안 이 곡을 대표하는 연주로 사랑받았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과일을 한 입 베어 무는 것처럼 싱그럽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우아하다. 아름다우면서도 화장기가 느껴지지 않는 파야르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연주다. 파헬벨이 17세기의 작곡가인 만큼 원전연주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첫손에 꼽고 싶은 것이 1980년 녹음한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지휘)가 고음악 아카데미를 지휘한 음반 (L'oiseau Lyre)이다. 낭만적인 분위기보다는 곡 자체의 윤곽이 두드러진다고 할까. 거트현의 음색이 예쁘고 지그에서 춤곡의 분위기도 잘 살아난다. ‘카논’만 6분대에 이르던 파야르의 러닝타임과 비교하면 호그우드는 카논과 지그를 모두 합쳐 5분대의 쾌속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의 초스피드 연주가 또 있으니, 라인하르트 괴벨이 무지카 안티콰 쾰른을 지휘한 음반(Archiv)이 그것이다. 카논과 지그 합쳐서 4분대. 33rpm을 45rpm으로 듣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곡의 엄정한 질서를 지키는 데서 어떤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스 슈미트 이세르슈테트가 북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음반(Tahra TAH 568-569)은 카논-지그-카논을 12분 30초대로 완보한다. 1954년의 연주이지만 낡았다는 느낌이 전혀 없고 독일적인 진지함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이 배어 나온다. 지그 후에 다시 나오는 카논은 장중해서 마치 브루크너 교향곡처럼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