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ONIN DVORAK(1841-1904)
Dvorak - Symphony No.9 in E minor, Op. 95 -From the New World-
드보르작크 - 교향곡 제9번 E단조 작품 95 -신세계 에서"
Karrajan, Conductor : < 카라얀 > 지휘
Wiener Philharmoniker
1.Adagio-Allegro molto....0:09:56
제1악장 아다지오 - 알레그로 몰토
신대륙의 새벽을 연상케 하는 마디가 길고 유연한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있다. 소박하고 힘찬 제1주제가 전개된 뒤에 플루트와 오보에로써 나타나는 제2주제는 흑인 영가 "모제 할아버지, 장미꽃 장수 모제(Old Moses sellsRoses)가 그 출처라고 하며, 독주 플루트가 단독으로 제시하는 선율도 미국인 사이에서 애창되는 흑인 영가 "조용히 흔들려라, 상냥한 마차여(Swing low, sweet Chariot)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런 데에 지나치게 신경 쓸 것은 없다.
제2악장 -라르고
전악장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부분인데, 잉글리쉬 호른이 연주하는 주요주제는 신대륙의 전원시(詩)의 한 토막이다. 뒤에 드보르자크의 제자 피셔가 이 선율에 가사를 붙여서 합창곡을 만들었다.
이것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귀향(歸鄕)"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선율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은 드보르자크가 칭찬해 마지 않았던 미국의 대 시인(詩人) 롱펠로우의 명작 "하이아와다(Hiawada)의 노래"를 애독한 영향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 악장에는
조국을 멀리 떠난 이민들의 애끓는 향수 같은 것이 잘 나타나 있다.
제3악장- 몰토 비바체
쾌활한 스케르쪼인데, 4소절의 강렬한 서주가 있은 뒤에 플루트와 오보에에 의해 주제가 튀어 나온다.
약동하는 현악기의 리듬, 높이 울리는 팀파니, 보헤미아 농민들의 거친 민속무용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플루트와 오보에가 보헤미아 민요의 선율을 연주하는 트리오도 매우 인상적이다.
제4악장 -알레그로 콘 포코
전체적으로 힘차고 격렬한 악장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전개부의 기법이다. 전개부는 웅대한 제1주제를 기둥으로 하고 있지만,
그 밖에 제1, 제2, 제3악장의 주요주제가 차례로 등장한다. 이것은 베토벤이 제9번 끝 악장의
주요 주제를 회상적으로 재생시킴으로써 전 악장을 튼튼히 결부시키려는 의도다.
그것이 여기서는 아주 잘 되어있다.
<해설>
드보르자크가 프라하 음악원의 작곡가 교수가 된 것은 49세 때인 1890년의 일이다.
이 때 그는 "체코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던 스메타나의 후계자로서 이미 확고한 지위에 있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51세 때인 1892년에 뉴욕 국립음악원 창시자인 자네트 더버(Jeanette Thurber) 부인으로부터 뉴욕 국립음악원 초대 원장이 되어 달라는요청이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망설였으나 계약기간은 2년이요, 1년에 8개월 근무에다 10회의 연주회, 그에 대한 연봉 15,000달라라는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에 결국 승낙했다. 그는 그 해 9월 15일 아내와 그리고 6명의 자녀 가운데 2명을 데리고 프라하를 떠나 26일에 뉴욕 땅을 밟았다.
그 때 그는 300명의 대합창과 80명의 오케스트라에 의해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의 생애에서 잊을 수 없는 2년 동안의 아메리카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아메리카의 여러 풍물은 드보르자크를 크게 자극했다.
그는 놀라운 힘으로 발전하고 있는 그 신대륙의 에너지와 소박한 아메리카 민요나 흑인영가 등에서 받은 강렬한 감동을 어떤 형태로든지 나타내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 최초의 열매가, 뉴욕에 도착한 이듬해인 52세인 1893년 1월에서 5월 24일에 걸쳐 초고를 완성한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해 여름에 휴가를 이용해서뉴욕에서 2,000키로 떨어진 아이오와 주의 스피르빌을 찾아갔다. 왜 그가 굳이 그 벽촌을 찾아갔느냐 하면, 그 마을은 남 보헤미아인들의 이민 촌이며, 그의 제자인 코발지크의 부친이 교사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그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고향에 보냈다.
"여기는 완전히 체코의 마을입니다. 그들은 모두 체코인으로써 학교나 교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쓸쓸함에 못 견디었던 그는 이 스피르빌에 와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체코 말을 맘대로 할 수 있었고, 체코 음식을 양껏 먹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곳 풍경까지도 "비소카"를 닮고 있었으니까, 그 곳에는 완전한 체코 생활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향에서 생활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 즐거운 기분에 잠기면서 이 교향곡의 오케스트레이션을 거침없이 써내려 갔던 것이다.
초연은 그 해 12월 16일 안톤 자이들(Anton Seidl)의 지휘로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행해졌다. 물론 연주회장인 카네기 홀에는 드보르자크 자신도 참석했었다.
그런데 이 교향곡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5번으로 불렸다. 그것이 지금은 제9번이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면 드보르자크는 모두 9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생전에 출판된 것은 그 중에 5곡뿐 이였다. 다시 말해서 출판된 순서로 보면 제5번이고, 작곡한 순위로 보아서는 제9번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의 고국인 체코에서도 이 곡은 제9번이라 부르고 있다. 이 교향곡에서는 "신세계에서"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이 "신세계"는 물론 아메리카 대륙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이 곡은 표제음악처럼 그 신대륙의 풍물 같은 것을 그대로 묘사한 음악은 아니다.
분명히 이 곡 속에는 흑인 영가나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요선율 등이 교묘하게 이용되고는 있지만, 그것들은 그 어느 것이거나를 막론하고 원곡 그대로의 선율은 아니고, 드보르자크가 자기식으로 일단 소화시켜서 쓰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독일의 어떤 평론가가, 이 곡에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선율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고 논평한 데 대해서, 드보르자크는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내가 이 곡에,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흑인영가의 선율을 원곡 그대로 쓰고 있다는 이야기는 넌센스다.
나는 그 선율들이 갖는 정신을 살려서 국민적인 것을 쓰고 싶었을 따름이다."
이로써 이 "신세계"라는 표제의 뜻이 해명되었다고 본다. 즉 "에서"라는 것은, 드보르자크가 아메리카에서 고향 보헤미아에 부친, 음악에 의한 망향의 편지 같은 것인데, 그것이 공교롭게도 아메리카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이 편지에는 아메리카 흙냄새가 난다는 의미의 "에서"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곡의 재료는 아메리카에서 얻었을망정, 곡의 기둥이 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헤미아의 정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드보르자크가 신대륙에서 들은 소박한 민요의 선율에 그토록 마음이 끌려서, 대담하게도 그것을 교향곡 속에 반영하였을까? 그 이유는 그가 비인 태생같은 도시인이 아니고 보헤미아 몰다우 강가의 시골 태생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보헤미아나 헝가리에서 많이 들은 마자르족의 민요와 공통된 것들을 그 속에서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드보르자크가 활동하던 당시의 국민음악운동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 것은 드보르자크 자신이 말한 다음과 같은 신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작곡가들은 자기가 속하는 국민의 민요정신을 곡 안에 반영시키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민요의 선율을 그대로 통째 쓰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정신으로써 작곡에 반영하는 일이다."
그거야 어찌 되었던 간에, "만약 아메리카를 보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교향곡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드보르자크 자신이 말하고 있다.
'수업 자료실 > 음악감상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차이코프스키 - 백조의 호수 (0) | 2008.08.26 |
---|---|
[스크랩] 학생음악감상교실 (0) | 2008.07.04 |
[스크랩] 베토벤 곡/그대를 사랑해 (0) | 2008.07.01 |
[스크랩] 음악동화 <피터와 늑대> (0) | 2008.06.22 |
[스크랩] 백조의호수 - 정경 (0) | 2008.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