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자료실/연주실황(교과서)

나의 조국 중 <몰다우>

풀꽃(muse417) 2008. 6. 4. 09:08

스메타나, '나의조국'에 대한 소개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529

 





  

  

또 다른 영상

(몰다우강을 따라 주변 경관과 함께 감상

-표제 음악을 이해시키기에 좋은자료이나 화면이 선명하지 않아 아쉽다.)

<체코슬로바키아 교향악단 / 지휘 : 비츨라프노이만>

 

 

<광고에 사용된 몰다우 음악>





 

Smetana, Bedrich

스메타나  

 

1)1824년 3월 2일   체코슬로바키아 출생

   1884년 5월 12일 사망

    만년에 귓병으로 인하여 귀머거리가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정신 착란증이 생겨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2)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족 음악 작곡가

    어려서 부터 음악적 천품을 나타낸 신동으로 불리워졌다

    4세때 벌써 4중주 곡인 제 1바이올린을 연주했다고하고

    6세때 피아니스트로 대중앞에서 연주를 할정도

    국민적인 음악 양식을 광범위한 예술적 음악 형식에 도입하였다

    애국의 열정을 지닌  보헤미아의 음악가 라 일컫는다

 

3)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오스트리아의 통치하에 있었다

    스메타나는 조국을 위해 다른 혁명가들과 함께 압장섰다  

    이때 애국적인 작품을 많이 작곡하여 요주인물로 지목되기도 했다

    체코가 이시점에 프라하를 중심으로 예술적 부흥이 일기시작했고

    스메타나는 자기의 위치를 깨닫고 국민오페라의 창작 운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보헤미아 음악의 창설자가 되어 민족문화를 발전시키게 되었다

    슈만, 쇼팽, 바그너, 구노 등과 함께 국민악파 음악

 

4) 낭만적인 책체가 강하고 비교적 단순한 선율을 더하여 깊이와 실질이

    겸비된 스메타나 만의 특유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의 초기 작품에는 슈만과 리스트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또 다른 작품에도 민족적 정서에서 많은 소재로 삼았다

 


 

스메타나는 드보르작의 은사가 되는 사람으로서 <체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다.

스메타나는 체코(옛날에는 보헤미아)에 민족주주의 음악의 씨를 뿌려서 그것을 키우려 했던 만큼,

그의 생애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인지 만년에는 정신이상에 걸려서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스메타나가 1883년 작곡해서 발표한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은 조국의 자연, 전설 및 역사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 체코의 음악문화를 세계적으로 드높이는데 있어 크게 기여했다.

그는 처음에 제1곡 <비셰흐라드>, 제2곡 <몰다우>, 제3곡 <샤르카>의 3부작으로 완성할 생각으로

1874년(50세) 작곡에 착수했으나 작품이 진척되는 동안 조국에 대한 사랑이 더욱 용솟음쳐 마침내

3곡을 더 추가하여 1879년(54세)에 전6곡의 교향시를 완성했다.

 

다시 4년 뒤인 1883년에 발표한 초대작으로 다음의 순서로 연주된다.

① 몰다우 강가에 솟아있는 보헤미아의 옛성 <뷔세흐라트 - Vysehrad> Eb장조 (1874년)

② 체코의 어머니 강 <몰다우 - Moldau(Vltava)> e단조 (1874년)

③ 보헤미아의 전설에 등장하는 여장부 <샤르카 - Sarka> a단조 (1875년)

④ 보헤미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그린 <보헤미아의 목장과 숲 - > g단조 (1875년)

⑤ 15세기에 종교와 정치에서 대개혁을 단행한 얀 녹스의 투쟁을 그린 <타보르 - Tabor> d단조 (1878년)

⑥ <블라니크 - Blanik> d단조 (1879년)


독일어로 교육받은 그는 40세가 넘어서도 모국어인 체코어를 배워야만 했다. 전6곡으로된 교향시 중

2번째 곡인 몰다우부터는 귀머거리가 된후에 쓰여졌다.

 

완전히 귀머거리가 된 스메타나가 그 고뇌와 좌절감에 빠진 시기에 이토록 상상력이 신선하고

기악 편곡이 화려한 작품을 구상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다.

 

표제에 충실한 음악의 흐름이라든지, 품위있는 묘사적 방법, 친밀감을 주는 선율로 인하여

사랑을 받는 곡이다.

몰다우(체코어로는 블타바)란 말할 것도 없이 프라하 시를 흘러내리는 강의 이름이며,

여섯 곡의 연작 교향시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명한 곡이다.

 

몰다우 강은 체코 남부에서 발원하는데, 그 흐름은 프라하를 꿰뚫고, 프라하의 북쪽 32킬로인

메르니크 부근에서 엘베 강과 합류하는 장장 430킬로미터의 긴 강이다. 이 흐름은 독일 중부를

꿰뚫고 작센에서 북해로 흘러든다.

이 몰다우의 흐름은 아름다운 프라하의 거리를 한층 아름답게 장식한다.

이 강에는 모두 13개의 다리가 걸려 있는데, 왼쪽 기슭에는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성

뷔세흐라트와 속칭 프라하 성이라 불리는 플라차니 성이 솟아있다.

 

우리 나라 서울이 한강을 끼고 자랐듯이, 프라하의 거리도 몰다우 강의 품에서 자랐다.

스메타나가 이 곡에 붙인 표제의 대의는 다음과 같다.

『이 강은 두 개의 수원으로부터 발원한다. 그 흐름은 바위에 부딛쳐서는 쾌활한 소리를 내며,

햇빛을 받아서는 아름답게 반짝이면서 점점 그 폭을 넓혀간다. 양쪽 기슭에는 사냥꾼의 나팔소리와

농부들이 추는 시골춤의 음악이 메아리치고, 밤이면 푸른 달빛 아래서 요정들이 춤을 춘다.

이윽고 물줄기는 성 요한의 급류에 부딪쳐, 그 물결은 물보라를 튀기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이곳에서부터 강은 프라하시에 흘러들고, 여기서 강은 고색 창연하고 고귀한 비셰흐라트 성을

우러러 보면서 도도하게 흘러간다.』

 

 

스메타나는 민족 음악 찾고자하는 노력에서 작곡했다. 스메타나의 곡은  현악사중주곡 1번

<나의 생애에서>(1876), 6곡의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약 1872-79)등이 있다.

 

 

몰다우는 나의 조국의 제 2곡이다.

 

<나의 조국>: 1.비셰라드, 2.몰다우, 3.사르카, 4.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 5.타보르, 6.블라니크 à

2곡 가장 유명. 5곡 가장 감동적. 체코 민족주의 운동의 상징인 도시 이름

 

 

<몰다우>의 형식: 단 악장 속의 다악장 형식, 이중 기능 형식의 예

     I.   몰다우의 수원               6/8   e단조   도입      

     II.  몰다우 테마            6/8   e단조      A         알레그로

     III. , 사냥                  6/8   부유                     

     IV. 농촌의 결혼식        2/4   G장조     B      - 스케르초

     V.  달빛, 요정의       4/4   Ab장조           -  아다지오  

     VI. 몰다우 테마            6/8   e단조     A’          

     VII. 요한 급류          6/8   부유                   알레그로

     VIII.몰다우는 광대하게 계속 흘러간다 6/8   E장조   코다

 




 

 

 

<카라얀>

 

 

  •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출생 카라얀은 모차르트 이후
    잘츠부르크에서 또 한명의 음악의 위인이 탄생한 셈이다.
    카라얀의 조상은 그리스 출신이었지만 오스트리아에 정착하여
    귀족의 칭호까지 얻게 되어서 카라얀 가의 성에는 귀족 앞에만
    붙은 von이 보태진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교육을 받았지만 이 분야에서도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던 차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콘서바토리에서 음악 교육을 받을 때부터 은사였던
    파움가르트너 (Bernhard Paumgartner)의 조언으로 마침내
    지휘자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 만년의 카라얀은 베를린 필 보다는 빈 필과 더 많은 활동을 가졌으며
    DG에서의 만년의 녹음들은 대부분 빈 필과 행해졌으며
    1985년 6월 29일에는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행해진
    교황 요한 바우로 2세가 집전한 미사에서 빈 필과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를 연주하게 되고 전세계 TV로 중계되기도 했다.
    1987년 1월 1일엔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지휘하기도 했으며
    그의 나이 80이 되는 1988년에는 그의 아내가 음반 표지를 그린
    100장의 기념음반이 DG에서 기획되기도 했다.
    그해 4월엔 예정된 연주회를 최소하고 베를린 필과 함께 일본,
    같은 해 10월엔 마지막 유럽 순회 공연을 떠난다.
    1989년 2월에 빈 필과 함께한 미국 공연은 그의 마지막 공식 연주가
    되었으며 그해 7월 16일 잘츠부르크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 무도회"의 오전 리허설을 끝낸 카라얀은 자신의 별장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출처 : http://blog.daum.net/regent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