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딸의 다이어리에서...
풀꽃(muse417)
2008. 12. 1. 13:14
시험을 코앞에두고서는,
이제막 샤워를마친 이불과 뜨거운밤을 보내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부드러운 이불과 뒹굴면서 책을 읽느라,
그리고 책이 잡아끌어내는 잡다한 생각을 하느라,
결국 공부를 하겠다는 계획은 온데간데없었다.
한약때문에 끊어왔던 커피에 다시 손을 대게 되었고,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이십여권의 책, 이천여개의 음악, 내가 그린 로비하우스의 평입면도,
이불의 뒤척임에 흔들거리는 사진들에 파묻힌채로.
문자소리에 잠이깼다.
주문한 책이 왔다는 메세지에
씻고나와 머리도 말리지않은채,
그가 있을 편의점으로 향했다.
'레인보우동경'
11월, 마지막 나의 책.
샤워를 하고 물기가 마르기전에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한다.
시원하다. 기분이 좋다. 가볍다.
머리카락이 자연 드라이기에 이리저리 휘날리며 말라가고있었다.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머리카락과 몸에 찬 바람이 닿는 느낌이 좋았다. 상쾌하다.
받자마자 뜯어 버린 택배상자를 쓰레기통에 넣고
빳빳한 책을 한 손에 들고 읽으면서 천천히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몸이 화-해짐을 느꼈다.
물기가 증발하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나의 존재를 느꼈다.
지구는,
나를 박하사탕 삼아 혀로 이리저리 굴려가며, 나를 맛보고 있었다.
지구의 시원한 침이 나를 맛보는 기분은, 날아갈 정도로 좋았다.
누런 책 위로 떨어진 눈을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보았다.
사르르 녹아버렸다
내가 녹고있었다. 드디어.
(11.29.토. 딸의 싸이 다이어리에서...)